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가지 인생에 대한 철학을 접하게 된다. 종교철학, 사상철학, 경제철학, 예술적 철학 등등. 그리고 그 모든 철학들의 중점은 나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서로가 행복하게 잘 살자는 것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 딴판이다. 그래서 롱펠로우의 인생철학 첫 판에 “슬픈 곡조로 나에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공허한 꿈일 뿐이라고 잠든 자기 영혼은 죽은 것이며 만물은 보기와는 딴판이라고 해서”라는 시를 쓴 것을 볼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이론으로 배우는 것과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차이가 있고 실행하기가 쉽지않다. 그런데 이런 각박한 현실 속에서 실행한 예를 하나 들어보고자 한다.

 

닭도리탕

퇴근길이었다. 아까부터 서너 걸음 뒤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순간 그의 앞엔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 낯익은 모습의 초라한 행색의 한 중년 여인이있었다. 누구지?  가물가물 기억속에서 잃어버린 시간 한 토막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바로 친구 형용이의 부인이다.

그래 20여년전 결혼식하고 서울 근처에 신접 살림 냈다며 경기도 부천역 부근의 방 둘짜리 300만원 전세집에서 친구들 불러 집들이 했던 중학 동창 조형용의 부인이었다. 차린건 많지 않았지만 정성이 묻어났고 우리는 그날 맥주와 소주를 벗삼아 옛 얘기하며 밤을 지세웠지. 그리고 그게 전부였나보다.

그 친구는 리비아의 아랍 대수로 건설공사 현장으로떠났고, 무심한 우리는 그뒷 소식조차 챙겨보지 않은채 여기까지 달려왔다. 운좋게 아직 대기업 계열사에 부장으로 있는 난 그래도 형편이 나은편이었다. 부천 집들이에 갔던 벗들도 하나둘 명퇴다, 정리해고다, 구조조정이다 하는 두어차례의 칼바람을 벗어날 수 없었고 요즘은 아예 모임 자체가 형상화된 셈이다.  가끔씩 생각나 홀로 포장마차에서 비우는 소주와 벗하는 추억으로만 곱 씹곤했다. 그런데 그녀가 왜?  이름을 기억 못하는 내 머리에 너무 화가 났지만 “저.. 혹시 형용이 부인.. 아니시던가요?”란 말로 그녀에게 첫 말을 건넷다. 그녀는 어색하고 또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무슨일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남편이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고 답한다.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급한 상황이 생겼다는 느낌에 함께 그곳에 가자고 했더니 갈수가 없다고 한다. 남편은 중동에서 돌아와 그럭저럭 거기서 번돈으로 지내왔는데 3년전 폐암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반복하던 끝에 결국 다음주면 생을 마감할 거라는 병원의 통보를 받았다는 거다. 그러면 이승을 떠나기 전에 얼굴이라도봐야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내게 용건을 말한다. 아무도 없어 나를 찾아왔노라고. 중환자실 입원 이전까지 나온 병원비는 부천에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어렵게 사는 친정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아 지불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는 것였다. 병원측은 당장 이삼일 내로 밀린 병원비 삼천만원을 내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내보내겠다는 거였다. 평생을 가족위해 살아온 남편에게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눈물 섞인 형용의 부인의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나라고 월급쟁이인데 뭔 대수가 있을까.  순간 카톡을 통해 온라인상으로 자주 대화가 되는 벗들이 떠올랐다. 일단 형용의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함께 들어갔다. 거실에서 집사람과 옛 얘기 잠시 시키고는 동창생의 마당발인 이시무라는 이름의 총무에게 전화를 했다. 사정이 이런데 내가 좀 여유가 있으니 1천만원 마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시무는 자기도 은행빚이 없는건 아니지만 거의 정리 되었고 보험 겸 저축상품 장기가입한거 해지하면 5백만원은 모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친구들에게 사정을 전하겠다고 했다. 많은 동창들이 적게는 몇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돈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무계좌로 보냈다. 돌아오는 진관사길 하늘은 잿빛이었다. 차창도 울고 가로수도 울었다.  10여년 전의 일은 그렇게 우리들 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져가고 있었다.

 

2부

세월이 흘렀다. 형용의 부인은 서울 변두리에서 테이블 2개짜리 조그마한 닭도리탕 집을 냈다. 처음엔 모든게 서툴렀다. 설익은 감자를 내동댕이치며 육두문자로 시비를 거는 주정꾼들은 그래도 나은 손님이었다. 인근에 먼저 영업하던 큰 식당 부부가 와서 괜시리 욕하며여자 혼자 남자 꼬시려고 하느냐며 비아냥 거릴땐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 모든걸 딛고 섰다. 먼저 가장 신선한 채소와 가장 맛있는 고추가루를 확보했다. 그리고 김치며 밥을 손수 정성껏 만들었다. 육수를 만들기 위해 별도로 닭 2마리를 따로 투자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그녀는 다른곳에서 도저히 맛볼수 없는  최고의 닭도리탕을 개발하는데 성공 했다. 인근에 금새 소문이 퍼졌다. 그맛과 정성이 명성을 만들었다. ‘식객’을 쓴 허영만 선생이 찾아와서는 최고의 찬사와 함께 ‘조선반도 최고 닭도리탕’이라 쓴 사인을 남겨줬다. 그렇게 해서 ‘조형용닭도리탕’은 지금 월 매출만 일천만원이 넘을 정도로 단골이 늘었고 상표등록까지 마친 서울 최고의 맛집이 되었다.

밴드를 통해 늘 만남을 실천해온 번개파들은 누구랄것도 없이 ‘조형용 닭도리탕’에 모여 들었다. 동창 6백명 가운데 그 집 모르는 친구는 없었다.  멀리 천안에서, 강릉에서 조차 가족들? 서울행사를 그 집에서 했다.

괴산에서 프리랜지로 들판에 풀어놓고 키우는 토종자연 청정 양계업을 하는 또 다른 동창이 그 소식을 접하고는 영원히 최고의 닭을 생산 원가에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식사때마다 대기하는 손님줄이 2백미터 넘게 길게 늘어설 정도였다.

형용의 아들은 가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자랐다. 바르게 자식 교육에 힘써온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지금은 한국의 국가 대표 기업인 현대 자동차의 전략 기획사에 입사 글로벌 마케팅 아이디어로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초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형용의 아내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저도 혀용씨 친구분들 밴드에 정식 맴버로 가입 할수 있도록 해 주실수는 없는가요?’ 물론 예스다. 누구에게 물을 것도 없이 예스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시무에게도 전했다. 시무는 고지할것도 없이 우리 모두를 이렇게 결속시켜준 형용이 가입하는 것보다 100배 더 반가운일이라며 그녀를 밴드로 불렀다. 그녀는 밴드 가입 인사를 이렇게 했다. “세상에… 저는 수어지교니 문경지교니 하는 말들은 그냥책에서나 있는 말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형용씨가 친구들에게 잘한것도 없는데 어쩌면 친구들의 사랑이 이렇게 큰수 있는지 참으로 고마웠어요. 전 정말 기대하지도 못했어요. 제가 그 은혜 평생 갚아나가며 살게요. 그리고 형용씨와 제가 만들어 키운 저희 큰 녀석이 지난달 좋은 아이디어로 마케팅 실적 눂였다는 공로로 회사로부터 특별 인센티브 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 전액을 저도 회원이 된 이 밴드, 바로 우리 남편의 동창생 모임의 기금으로 기부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바로 우리 모두의 우정이었고, 우리 모두의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는 뜨거운 물줄기가 눈가에서 흘러 내리는걸 그 밴드글 읽으면서 억제 할수 없었다.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있는 그 닭도리탕 집은 전세계 어떤 식당보다도 가장 눈물 깊은 사연을 안고 출발했다. 하지만 어떤 식당도 해내지 못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편안한 벗들의 안방이 되었다. 오늘 봄볕이 무척 따사롭다. 이저녁 퇴근길이 무척이나 가볍다. 아니 기대가 가득하다. 분명, 굳이 밴드에 고지하지 않아도 늘 600명 가운데 10여명은 그곳에서 감자와 닭다리를 뜯으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웃고 떠들수 있을거라는 기대로 말이다. 사랑과 우정의 크기는 어느게 더 클까? 그 부동호의 결말을 혼자 셈해보며 회사를 나선다. 오늘은 형용의 아내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오메기떡 한봉지를 사가야겟다. (끝)

 

인터넷에 오른 글을 옮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다고 본다. 이론만 가지고 백날 떠들면 뭣하리.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도 행동에 옮기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조그만 행동이 이 사회에 행복을 가져온다고 본다.  우리 교민 사회에도 얼마전에 강도에게 총상을 당해 시립병원에서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는 교민이 있단는걸 신문이나 구두를 통해서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사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어렵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다. 병원에서 통역도 제대로 되지않아 상태를 가족에게 전달하는데도 문제가 생겨서 한번도 보지도 못한 나와 친구의사가 가서알아본일도 있다. 속해 있는 교회가 그 정도 사랑을 베푸는 것은 할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을 살고 있더라도 서로가 조금씩 도와 준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훨씬 수월 할 것이라고 본다. 과연 누가 진정 좋은 사마리아인인지 생각해봐야 할때다. / 주일 생각

By 탑뉴스

탑뉴스는 (사)재외미디어연합 남미지부입니다. 연합언론 프롬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