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 동정 2023.03.09

3월 6일(월18시) 상파울루 시의회에서 Sandra Tadeu 상파울루 시의원의 주도로 브라질 한인 이민 60주년을 기념식이 거행 되었습니다.

이날 60주년을 기념해 시의회와 한인회에서 한인사회에 공여한 인물을 선정해 공로패를 수여했습니다.

수여자로는 박동수 브라질한인회 고문, 제갈영철 한브장학회 고문, 고우석 한인타운발전회장, 한명재 꾸리찌바 전한인회장, 황윤재  전 한국전통무용학원장에게 전달 했습니다.

그 외에도 한인 사회를 위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 모든 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 박동수

1943년 12월 7일에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여, 젊은 나이에 1971년 11월 25일에 브라질로 이민 왔다.

이렇게 국가대표야구팀의 대표피쳐의 이민 생활이 막을 열었다. 그의 행적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금전적인 성공사례가 아니라 브라질한인회의 회장으로서 그가 행한 것들이다. 당시 한인공동체는 노예와 흡사한 노동착취라는 불법적 노동관계를 퇴치하려는 당국의 막강한 압력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주로 재봉공장과, 숯공장 그리고 사탕수수농장에서 발생하였다. 그것은 2007년과 2008년쯤이었다. 당시 브라질 한인회는 이 문제에 대해 정부와의 회의에 참석한 유일한 민간단체였다. 의류생산계의 관계를 설명하고 노동착취가 아니고 빠른 경제안정을 위한 자발적노동에 대해 역설하였다. 이것은 의류업에 종사하던 대부분의 한국인 동포들에게 법적 요구에 적절히 적응할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혹 노예노동 퇴치작전이 먼저 실행되었다면, 감당할 한인변호사의 숫자도 모자랐을 것이다. 교육면에서도 노력하였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POLILOGOS학교를 맡았고 한국과 브라질 교육제도를 동시에 실시하던 당시의 구조를 개선하여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큰 노력을 하였다. 흔히’세뇰 안토니오’라고 불려지는 그가 당시의 한인회장으로서 나서서 한 행동 때문에 우리 한인의류업계가 보호를 받은 사실과 한국학생들을 위해 봉사와 지원을 한 사실이 지워지지 않도록 브라질한인회는 그의 업적을 상기하고 기리기 위해 감사패를 증정하는 것이다.

– 제갈영철

대한민국에서 1953년 2월 4일에 출생하여, 1971년 5월 2일에 18세의 나이로 브라질에 이민왔다. 그렇게 이 이민전투사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의류제품에 대한 기술을 터득하였는데, 그곳은 맏형의 공장이였다. 긴 시간동안 묵묵한 노동과 배움을 통해 오늘의 사업가가 된 그는 열정과 인내의 결정체이다. 브라질 노래 가사 그대로 ‘서류도 없고 주머니에 돈도 없이…’ 브라질에 온 그는 오늘 건전하고 번창한 사업가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한인사회가 그에게 감사한 것은 그의 태도와 행동이다. 언제나 직책에 관계없이 공동체를 위해 몸소 일하고 또한 기부도 하는 그의 선한 마음이다. 브라질한인회, ESCOLA POLILOGOS(브라질한국학교), 한브장학협회뿐만 아니라 많은 단체들이 그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특히 위에 지적한 단체들의 여러 전 회장들은 제갈영철씨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의 행동과 지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많은 회장들이 단체를 이끌어 나가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직책에 있던 무명이던 도움을 주는 그의 행위에 근본은 그의 선한 마음이다. 그것은 어떤 인정이나 보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더러는 말하기를 꺼려하기도 하고, 그리고 선한 행동은 쉽게 망각속에 사라지곤 한다. 그래서 이 행사를 통해 그거 행한 한인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지원을 알려 기록에 남게 하려는 것이다.

– 고우석

1957년 7월 4일생으로 브라질에 1985년 10월 30일에 브라질로 이민왔다. 새로 도착하는 모든 이민자들이 생존과 적응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면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언제나 여러 단체에 참여하였고 현재 한인타운발전회(한타발)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한타발은 2022년 2월 12일에 ‘봉헤찌로 시장-FEIRA DO BOM RETIRO’을 개장하였다. 현재 한국인을 포함한 지역사회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고, 또한 언론에도 알려져서 토요일에 봉헤찌로에 가 볼만한 장소가 되었다.

매주 토요일에 한국인, 브라질인, 볼리비아인, 페루인 그리고 해군군악대, 락밴드, 삼바, 줌바,K-POP 등의 음악이 연주되며 각 민족들의 전통음식도 맛 볼 기회가 있다. ‘봉헤찌로 시장 FEIRA DO BOM RETIRO’는 다민족 문화 행사 장소가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이것은 한국인들이 한국문화의 우월성이라는 망상에 사로 잡혀 봉헤찌로를 한국화하려 한다며 편파적으로 빈정거리는 일부 언론에 대한 사실(팩트-FATO)에 근거한 확실한 반박이다. 그 반대로 그는 한타발 회장으로서 ‘봉헤찌로 시장’을 통해 봉헤찌로를 이미 잘 알려진 여성페션생산지 뿐만 아니라 다문화적 관광지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개척과 도전을 통해 지금 현재 봉헤찌로와 우리 한인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감사패를 드리는 이유이다.

– 한명재

1954년 1월 13일에 서울에서 독립투사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 한준관씨와 아버지 한응규씨 두분 다 건국훈장을 받으셨다. 브라질에는 1972년 1월 10일에 이민 왔고, 당시 태권도 사범팀의 한 멤버로 참가하며 브라질 각지에서 태권도를 홍보하고 가르쳤는데, 특히 그가 1972년에 빠라나주에 창립한 태권도 도장을 통해 수 많은 검은띠의 브라질 사범들이 발출되었다. 그는 태권도의 기술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 한인들에게 계승되는 한민족의 건국정신인 홍익인간에 대해서도 전달하였다. 따라서 그는 한국에 대한 스포츠 대사역할 뿐만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정신에 대한 홍보역할도 한 것이고, 이것이 이번 감사패를 증정하게 된 이유다.

– 황윤재

1964년 8월 15일에 출생하여 1972년 11월 20일에 브라질로 이민하였다. 보통, 헤지나(REGINA)선생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상파울로시립극장, 브라질외교부, 깜삐나스, 리오, 바이아 주, 브라질리아 등뿐만 아니라 브라질과 한국의 주요 TV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15년간 156번의 공연을 통해, 그녀는 황윤재무용단을 이끌며 브라질내의 한국고전춤 홍보의 선구자로서 홍보대사 역할을 하였다. 언제나 한국단체나 공관의 행사에 그녀의 고전무용은 빼 놓을 수 없는 의무적 행사이었다. 수준높은 예술의 화려함과 문화 홍보에 대한 기여는 왜 한인공동체가 감사패를 수여하는지에 대한 긴 말이 필요 없다. 단지 한인공동체의 고마움만 있을 뿐이다.

위와 같은 한인회의 선정 인물과 공로에 대해 소개 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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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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